어느새 16개월 40 weeks + H2O




어제 하윤이를 재우다 문득 생각해보니 며칠 후면 500일이다. 돌 지나고부터는 마치 암묵적인 약속인양 제법 의미있어 보이는 날들을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500일이라니. 어감이 제법 묵직하다. 작은 컵케익에 촛불이라도 켜야겠다.


요즘 날씨가 워낙 따뜻해 베란다에 퍼즐매트 깔아두고 나가서 뒹굴거리며 노는데, 그저 나가는거면 베란다라도 좋은 하윤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부터 나가자고 조른다. 요즘은 요녀석이 말만 안 할 뿐이지 의사표현이 얼마나 확실해졌는지, 원하는게 있으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옷을 끌어당겨 데려가고 눈빛으로 표현한다. 내가 엄한 표정지으면 눈치를 살살 보면서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내가 장장 2주가 넘는 시간동안 아주 인텐시브하게 아픈 동안 하윤이마저 덜컥 감기에 걸려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열이 오르거나 하는 증세없이 콧물감기만 왔었는데, 코 밑이 벌개져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짠한지. 특히나 데이케어에 있는 동안은 아무래도 엄마 손 가는 것만큼 세심한 보살핌이 없으니 콧물 범벅이 되어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덜컥 들 정도였다.




한창 입맛이 돌아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있었는데 감기때문에 밥도 잘 안 먹으려드는 통에 속상했는데, 어제부로 콧물도 똑 떨어지고나니 다시 밥 한그릇 뚝딱 뚝딱 잘 해치운다. 뭐니뭐니 해도 밥 잘 먹는 모습이 젤 이쁘다.


요즘 요녀석이 어디서 배웠는지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을 자주 짓는다. 특히 테이블 위에 기어 올라가 우뚝 서서는 자기 좀 보란듯이 어찌나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대는지, 거기에 "우와~"하고 추임새라도 넣어주면 어깨마저 발사될 지경이다. ㅋㅋ



아직 엄마 아빠(이것도 랜덤으로 나오는...) 외에 할 줄 아는 말은 없지만, 말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하윤아 물 어딨어, 우유 어딨어, 하면 자기도 같이 찾는 시늉을 하면서 온 방을 뒤지고 탁자 밑 소파 밑을 샅샅히 뒤진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드니 언젠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참 재미있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소아과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선크림을 발라주기 시작했는데, 얼굴에 톡톡 찍어주면 꼭 거울에 자기 얼굴을 확인한다. 한동안은 하도 거울가서 자기 얼굴을 자주 보고 그 앞에서 혼자 웃다가 울다가 하길래, 연예인이 되려나 싶었다. ㅋㅋㅋ


요즘 하윤이는 효자다. 아빠 옷 챙겨주는 효자. 아빠가 자고 일어나거나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손발 씻는걸 보면 아빠가 집에서 입는 옷을 알아서 대령해 바친다. 매번 잊지도 않고 잘도 갖다주는데, 나한테는 아침에 일어나라고 안경과 휴대폰을 가져다준다. 좀 깨라고! ㅋㅋㅋ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닦기에 한창 빠진 하윤이. 하루에 두어번 닦여주는데 이제 좀 익숙해졌는지, 달달한 아가용 치약맛이 좋아졌는지 칫솔을 저렇게 물고 다닌다. 하지만 아직 모를 일이다. 어느새 또 변덕을 부려 이 안 닦겠다고 고집부릴지.


지난 주에는 날씨가 참 좋길래 동물원 나들이를 했다. 왠일로 주차 자리도 쉽게 좋은 곳으로 잘 찾고 날씨도 안성맞춤이었는데, 종일 콧물에 시달린데다 낮잠을 조금 밖에 못 잔 하윤이는 내내 징징징징징징 짜증짜증짜증짜증 안아줘안아줘안아줘 하다가 오랑우탄 보고는 무서워서 엉엉 울다 집에 왔다. 덕분에 나는 그 날을 기점으로 감기가 더욱 악화되었다. 하지만 동물원은 꽤 괜찮았다. 동물원 가본지 한 20년은 된 것 같았는데, 요즘 동물원은 많이 발전했는지 상당히 자연/동물 친화적으로 바뀐듯 했다. 사실 나는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동물을 좁은데 가둬두고 구경시킨다는 것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멋에 눈을 떠가는 것인가. 선글라스만 끼우면 난리를 피우던 하윤이가 요즘은 선글라스를 끼고 으레 그 "으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한동안은 뽀로로에 푹 빠져서 하루에 한 시간은 뽀로로를 보겠다고 TV 켜라고 난리더니, 요즘은 10분짜리 한 편이면 슬슬 지겨워한다. 까다로운 남자야. 뽀로로를 보며 콩나물을 다듬는 하윤이. 하지만 콩나물을 하나씩 바닥으로 옮긴다는 점~



감기가 너무 심해서 혼자 전기장판 켜고 이불 몇 채 덮어쓰고 자고 있는데, 먼저 일어난 하윤이가 옆에 와서는 음악을 틀어재낀다. 물론 일어날 때까지 ㅠ



일주일에 세 번 학교 가는 날 남편이 하윤이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하는데, 둘이 있으면서 남편이 찍은 사진을 보면 하윤이는 대부분 저러고 있다 ㅋㅋㅋ 아후, 요즘은 어쩜 짜증을 그리도 잘 내는지!!



곰돌이를 부쩍 사랑하게 됐다.



그동안 보던 책이 지겨워졌을까 싶어 푸 보드북 세트와 얇은 책 한 권을 사왔는데, 하윤이는 그저 자동차, 자동차, 자동차 뿐.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저 미니 자동차들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딱히 남자아이라서 자동차를 부러 쥐어주거나 한 것도 아닌데 저리 자동차를 좋아하는거보면 참 신기하다.


감기가 똑 떨어지고 나니 또 제법 큰 느낌이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또 한 뼘 쑥 커지고는 한다는데, 틀린 말은 아닌가보다. 요즘 아프고 바쁘다는 핑계로 하윤이한테 많이 신경을 많이 못 써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기운내어 힘껏 더 사랑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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